2025년 12월 3일, 봉기의 시간은 어떻게 흘렀을까요? 안녕하세요, 봉기입니다!
작년 이맘때 한국에 있던 대국민 빅 이벤트(?) 하나를 기억하시나요. 바로 12월 3일 밤,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순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절로 뒷목을 잡게 만들던 한화/파운드 환율도 빅 이벤트 Top 3 안에 들어갑니다)
오늘 봉기는 그날의 일을 이야기 해보려 해요. 그간 팔레스타인 연대 소식을 위주로 전한 터라 봉기의 색이 마치 '팔레스타인 뉴스레터'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요.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주목한 분쟁의 하나였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2024년 12월, 봉기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초유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도 주목했습니다. 분쟁, 나아가 민주주의와 권리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봤기 때문이죠. 이번 뉴스레터에는 봉기의 당시 사흘 간의 행보를 담았습니다.
그때부터 봉기를 읽어주신 독자들께서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느낌으로, 비교적 최근 봉기를 접한 독자들께서는 팔레스타인 소식 외에도 봉기가 어떤 사건을 조명하는지 살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흥미롭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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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오후 10시 30분
#가짜뉴스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기말 앞둔 대학생은 그저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앤디
그날은 솔과 밤 늦게까지 회의실에서 기말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벼락치기를 하느라 전공 수업 피피티 속 내용이 외워지지 않아 고전하던 중, ‘갑자기 비상계엄이 발령됐다’는 솔의 헛소리를 듣게 되는데요.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내가 계엄의 뜻을 잘못 알고있나?’, ‘그거 역사 교과서에서 본 말인데? 언제지, 전두환 시절에?’, ‘솔이 허접한 가짜뉴스를 믿을 애가 아닌데 설마 진짜인가?’, ‘...아니, 근데 비상계엄이 뭐지?’ 제가 알고 있는 그 계엄과 같은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심지어 방송 3사가 동시에 진행하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도 인터넷 세상이 나를 상대로 거대한 트루먼쇼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삼십 분쯤 지나자 이게 실제 상황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지만요.
☀️ Sol
앤디와 함께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서울에 장갑차가 진입하고 있다’, ‘곧 단전·단수가 될 것이다’라는 낭설이 퍼지는 걸 보고 막차가 끊기기 전에 어서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요. 지하철에 앉아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뉴스를 보며 문득 ‘이대로 집에 들어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노선을 틀어 마장역에서 내려 여의도 행 열차를 탔습니다.
급하게 나오느라 휴대폰 배터리도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밖에 있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 여의도역 앞 편의점에서 일회용 보조배터리를 구입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는데요. 복잡한 심경으로 편의점에서 나와 목격한 광경은…검은 하늘을 날고있는 헬기 여러 대와, 동여의도에서 서여의도로 넘어가는 길목인 여의도공원 앞에서 45인승 버스를 꽉 채운 특공대원들이었습니다.
🪴앤디
저는 그날 특공대라는 걸 처음 봤어요. 사실 솔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냥 빈 버스인줄 알았고요. 창 안쪽이 어두워 잘 안 보였으니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무장한 채 무기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모여있는 이들이 주는 위압감은 대단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학교를 다니는 저로서는, 일상에서 군인을 볼 기회조차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특공대라니.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두리번 거리며 도착한 국회의사당 앞은, 이미 꽤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패딩 안 잠옷 바람으로 생중계를 하는 기자도 보였고요, 별반 다르지 않은 차림새에 걱정어린 얼굴로 국회의사당 건물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시민, 힘차게 구호를 외치거나 깃대를 흔드는 시민, 우리처럼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시민…다양했습니다.
당시 솔과 저는 학잠(대학교 점퍼)을 입고있던 탓에 인터뷰도 여러 차례 했는데요. 특히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엔 ‘지금 어떤 심정이냐’는 질문엔 ‘그저 당혹스럽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상했냐’는 질문엔 ‘사실 지금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초유의 사태가, 그리고 제 바보같은 인터뷰가 외신을 통해 보도 된다 생각하니 수치스러웠습니다. 국가나 정부에 자신을 대입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날만큼은 국가의 수치가 나의 수치처럼 느껴져 인터뷰를 하면서도 명치 부근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Sol
학잠을 입어서 좋았던 일도 있습니다. 건축공학과 선배님의 우리 옷을 알아보시곤, 추운 날에 고생한다며, 어떤 마음으로 나왔는지 공감이 된다며 택시비하라고 현금을 쥐어주셨는데요.(4년 만에 처음으로 느낀 애교심…) 3시 30분이 훌쩍 넘어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데, 솔직히 너무 피곤했고요. 내일 아침… 아니지, 바로 4-5시간 뒤 등교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습니다.
🗿프롬
저는 12월 4일에 짝꿍과 롯데월드에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길을 찾아보다 뉴스를 접했죠 … 롯데월드에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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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오후 7시
#비상계엄 다음 날의 풍경
#절망 절망 절망 뿐...
☀️Sol
집에 도착했을 땐.. 4시 절망 절망 절망 뿐… 겨울 밤 오들오들 떨며 앉지도 못하고 서서 국회의사당 앞 대치 상황을 지켜보다가 왔는데, 몸이 안 힘들리가 없었죠… 그런데 학교에 갔더니 간밤의 해프닝 정도로 사람들이 실패한 계엄을 농담거리로 삼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니, 착잡했습니다. 저는 어제 대공차량.. 앞을 막아서고 왔는데 말이죠…?
🪴앤디
이미 몇 시간 못 잔 채로 등교한 터라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당일 오전에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주변의 다른 이들은 어차피 해제된 계엄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보고 ‘내가 이상한 건가’하는 생각에 다른 것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하필(?) 그날은 봉기 편집 회의가 있는 날이었는데요…어쨌든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발행은 발행이지’하는 책임감 반, ‘봉기 사람들을 만나면 이 갑갑함이 좀 해소될까’하는 기대감 반에 회의실로 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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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새벽 3시
#회의실의 불은 꺼지지 않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프롬
아주 단순한 마음이었습니다. 배설하듯 지금 이 분노를 싸지르자 ! 의 마음이요 … 그러다 주변 젊은이들의 다른 대자보를 읽으며 나의 분노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싸지를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동료 앤디와 솔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 극악무도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쓰기 시작했습니다.
☀️Sol
분명 봉기 글을 쓰러 모였는데 말이죵.. 이역만리 팔레스타인의 분쟁 상황보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땅, 한반도의 분쟁 상황이 더 심각해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분명 3일 밤에 대통령이라는 사람 입에서, 종북주의자 - 반국가세력 - 일거 - 척결 등이 나오는 것이 지구상 존재하는 또 다른 분쟁지역, 즉 한반도를 상기시켰고, 그것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분쟁지역 전문 뉴스레터 봉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2.3 계엄의 밤이 지나고, 4일 온 세상이 그날 밤을 우습게 아는 것이 화가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간밤 일어난 실패한 계엄, 멍청한 대통령이 또 얼큰하게 취해서 실수했나보네 같은 시선들로 그날의 일을 우습게 하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물론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는 학우들이 급하게 적어낸 대자보가 캠퍼스 곳곳에 하나 둘씩 붙었지만, 썩 마음에 드는 글이 없었습니다. 내 언어로 계엄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글을 한편 짜보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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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오후 3시
#인생 첫 대자보 출력
🗿프롬
물성을 입은 글은 무기가 되더군요 ! 아주 벅차는 기분이었습니다.
참고로, 대학가의 비슷한 움직임을 기록하는 홈페이지도 개인적으로 만들어 보았는데요. 당시의 대자보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홈페이지 바로가기)
☀️Sol
대자보는 처음 써봤는데, 끝에 끝까지 수정을 했습니다. 전날 밤에도 대자보를 쓴다고 잠을 못 자서, 혹시 우리가 빠뜨린 건 없을까, 오타는 없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검수를 했어요. 세 명의 이름을 걸고 캠퍼스에 붙을 글이기에, 더 조심스럽게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전문은 봉기의 옛 발행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바로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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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오후 4시
#이제 붙이러 가보자, 대자보
🪴앤디
A1 용지에 출력을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든다는 걸 아시나요. A1 용지는 아주 커다랗다는 사실도요. 저는 이날 직접 출력을 해보기 전까진 몰랐습니다. 거대한 복합기에서 귀하게 뽑은 대자보 꾸러미를 들고 돌아가는 길에는 뭔가 될 것 같다는 묘한 고양감과 거대 세력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라는 무력감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Sol
대자보가 생각보다 많이 컸거든요… 어디 붙이지 보단 어떻게 붙이지가 많이 걱정이 됐어요.. ㅎㅎ 그리고 빨리 붙이고,,, 쉬고 싶었습니다.
🗿프롬
대자보를 붙이려 돌아다닐 때 하필이면 비가 왔습니다. 종이가 젖지 않을까 종종거리며 비사이로막가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자보를 붙이기엔 앤디와 솔 그리고 저 모두 키가 작았습니다. 손을 부들부들 떨고 까치발을 들어봐도 영 소용이 없더군요. 그래서 키가 큰 다른 동료를 스카우트 했고… 아, 모든 것은 쉬워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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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오후 3시
#요즘 대학생은 하교하고 집회 가
☀️Sol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깃대와 깃발을 들고요. 여의도역에 도착했을 때, 여의도는 마치 무법지대와도 같았습니다. 도로교통법이 무색할 정도로, 차와 버스 인간이 뒤엉킨 도로는 참으로 인상적이었지요.. 사람이 무쟈게 많은 탓이었습니다.
저는 이날 오후 내내 엄청나게 큰 저 사진 상의 깃대를 들고 있었는데요. 헤헤… 너무 힘들었어요… 진짜 이때 어떻게 버텼지?... 여러분, 깃발 맞추실 일 있으면 무조건 작은 사이즈로 하십쇼. 크다고 다 좋은 게 아냐… 이날은 탄핵 정국의 첫 주말이었는데, 탄핵 표결까지 아주 다사다난했지요. 현실의 괴로움이 너무 큰 탓에 프롬과 함께 익숙한 비트에 맞추어 신나게 흔들어 제낀 게 기억에 남습니다. 현실은 시궁창일지라도 오늘은 축제처럼 즐기자! 뭐 그런 식으로요.
🗿프롬
당연히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집회는 가결 이후 파티를 위한 프리게임 같은 것이었고, 모두 심란한 마음을 환호와 연대 그리고 노래와 춤으로 승화시키고 있었죠. 그런데 재적 의원 수 미달로 탄핵소추안이 부결되었을 때에는 그냥 막막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랑은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하하)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 모양이라니 … 싶었죠.
🪴앤디
이 대국민 깃대 흔드는 모임은 겨울을 지나 봄까지 이어집니다. 비록 매주 광장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봉기 멤버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광장을 찾았고요. 하다보니 그냥 루틴처럼 느껴져 뒤로 갈수록 ‘이번 주도 집회 감?’, ‘ㅇㅇ’ 하는 식으로 결정하기도 했는데요. 이제와 돌아보니, 깊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내란블루에 잠식되는 기분이어서 별일 아닌 척 흉내라도 내본 것 같네요.
그렇게 이런 용기 저런 용기 다 끌어모아 버티다 보니 어느새, 4월이 되었습니다. 무기력해도, 회피하고 싶어도 버티는 봉기의 맷집은 이때 형성된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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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고픈 욕심이야 굴뚝같지만, 이번 편에서는 2024년 12월 3일부터 며칠 간의 스케치만 담는 것으로 마무리 해보겠습니다. 앞으로도 봉기가 팔레스타인에서의 학살과 분쟁 외에도 어떤 이슈에 주목하는지는 차차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지금까지 봉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맷집 센 봉기는,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온 봉기는, 다음 주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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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팔레스타인과 관련하여 일어난 이야기를 일선의 보도를 통해 공유하고, 정리해드립니다. 1996년 뉴욕에서 시작된 독립 언론 데모크라시 나우 (Democracy Now), 1989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인권 옹호 비영리 단체 벳셀렘 (B'Tselem), 2001년 시카고에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전문 독립 언론 일렉트로닉 인티파다 (The Electronic Intifada) 의 글을 중심으로 다양한 자료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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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nic Intifada] Pregnant women in Gaza face catastrophic scenarios (바로가기)
가자지구의 임산부들은 전쟁 속에서 총격을 피해 수km를 걸어서 병원에 도착하지만, 전쟁과 장기화된 포위 상황 속에서 심장 박동이 멈춘 상태의 태아를 발견하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5년 상반기에만 가자 전역에서 약 2,500건의 유산·신생아 사망이 보고되었고, 같은 기간 출생아 수는 2022년에 비해 41%나 감소했습니다. 가자지구의 임산부들은 유산, 조산, 기형아 출산, 산모 사망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의료 인프라 붕괴와 영양실조, 강제 이주, 독성 물질 노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재앙적인 수준의 모자보건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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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Jazeera] 교황 레오 14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법으로 두 국가 해법 재확인 (바로가기)
순방길에 오른 교황 레오 14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유일한 해결책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포함한 두 국가 해법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그는 동예루살렘·서안·가자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바티칸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현재 이스라엘이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지만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이 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 하마스를 ‘보상’하고 더 큰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외부·내부 압력에도 팔레스타인 국가 반대 입장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밝힌 상태로 교황의 발언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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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cracy Now] 유엔 "가자지구 재건 비용 700억 달러 이상, 수십 년 소요" (바로가기)
유엔은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으로 재건에 700억 달러 이상이 들고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23~2024년 가자 경제는 87% 위축되었으며 1인당 GDP는 161달러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이스라엘은 10월 10일 휴전 발효 이후 최소 342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습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구연구소는 가자지구 사망자가 10만 명을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으며, 가자지구 기대수명은 2023년 44%, 2024년 47% 감소했다고 합니다. 겨울 우기로 인도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200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적절한 하수 시설 없이 텐트에서 지내면서 폭우로 오물 구덩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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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 동안 한국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수 있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모임과 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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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과] 서아시아 영화의 밤 (링크)
📆 12월 4일(목) 17:00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8관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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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사람들 (울산)] 울산 42차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와 행진 (링크)
📆 12월 7일(일) 14:00 📍파스쿠찌 울산 삼산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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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에코토피아]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대하는 자전거 타기 (링크)
📆 12월 7일(일) 14:00, 16:00
📍망원 한강공원(14:00), 반포 한강공원(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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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평화연대 BDS Korea] 2025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회원모임 팔연대 연말정산 (링크)
📆 12월 14일(일) 12:00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사무실(울산 중구 종가로 305) (참가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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