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그들은 테러집단인가? 혹은 정부인가?
팔레스타인은 ‘국가’다 |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독립 투쟁 끝에 2013년 국제사회에서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다.
한국은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한국은 팔레스타인과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대안적 교류는 계속되고 있으며, 2024년 4월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 추천 결의안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행사했다
팔레스타인을 오해하고 있다 | 언론은 팔레스타인을 하마스와 동일시하거나 '테러 집단'으로 단순화하여 보도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팔레스타인의 다양한 목소리와 정당한 요구를 왜곡하고 갈등 해결을 위한 평화적 논의를 방해할 위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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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는 ‘이슬람 저항운동(Harakat Al-Muqawama Al-Islamiyya)’의 아랍어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이름입니다. 이 조직은 이집트를 거점으로 둔 수니파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의 분파 출신 인사들이 1987년 제1차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인티파다) 당시 결성한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 정당이죠. 하마스는 인티파다에 적극 참여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이름을 알렸어요.
이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공식 정부 역할을 겸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타협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주도로 PLO와 이스라엘이 체결한 오슬로 평화 협정을 불평등 조약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했죠.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대신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무력 저항을 포기하도록 약속한 내용인데, 이는 결국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마스가 비판했던 PLO는 1959년 팔레스타인의 독립운동을 위해 조직된 파타(Fatah)에 의해 1964년부터 독점되고 있었어요. PLO를 장악한 파타는 1980년대 이후 이스라엘에 "불개입" 원칙을 내세우며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대가로 재정적 지원을 받는 전략을 택했죠. 그 결과, PLO는 점점 더 무력하게 이스라엘과 타협하는 노선을 걷게 되었고, 오슬로 협정의 결과로 PLO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PNA)로 승격되었습니다.
이후 1996년 팔레스타인입법회(PLC)가 첫 총선을 실시했을 때, 하마스는 이 총선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1948년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 문제 등 주요 쟁점들이 오슬로 협정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 사이, 미국은 2000년 PLO와 이스라엘을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에 반대하면서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으며,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제2차 인티파다를 일으켰죠. 이 투쟁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타협적인 태도를 보여준 파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2006년, 하마스는 처음으로 총선에 참여했습니다. "변화와 개혁"을 표어로 내걸고,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타협주의 노선을 택한 파타에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죠. 그 결과,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총 132석 중 74석을 차지하며 대승을 거뒀어요. 하마스가 PLC의 집권당으로 등극한 순간이었죠. 이는 이스라엘의 지속된 탄압과 봉쇄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해방을 바라는 민중들의 염원이 반영된 결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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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집권 후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향해 강경주의 노선을 재확인하며 저항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끄는 PNA를 안보 위협, 즉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했고, 이로 인해 가자지구는 연료, 수도, 전기 등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마저 이스라엘에 의존해야 하는 국면에 처하게 되었죠. 하마스는 서방의 제재를 피하고자 연립을 시도했으나 미국과 EU의 외면으로 실패했고, 팔레스타인의 통치구조는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서안지구의 파타를 중심으로 이원화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이 두 개의 정부로 분열된 가운데 하마스의 PNA는 자립기반을 갖추지 못해 정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가자지구를 향한 이스라엘의 잔혹한 봉쇄와 탄압이 지속되자 2008년부터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본격적인 무력 충돌을 겪었으며 가자지구 주민들의 생존은 더욱 위태로워졌죠.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충돌은 하마스가 10월 7일 공습을 감행하기 이전까지 지속돼 왔으며,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생존의 위협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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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연도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망자 수
2023년 10월 7일 오전 6시 30분, 하마스 군사 사령관 모함마드 데이프는 “오늘은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는 위대한 날”이라고 선언하며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 공격했어요. 이 공격으로 1195명의 이스라엘인과 외국인이 사망하고, 251명이 인질로 붙잡혔습니다. 이 사건 이후, 모함마드 데이프는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혔고, 10월 7일은 ‘하마스 테러’ 또는 ‘하마스 공습’으로 기억되었죠.
이스라엘은 즉각적인 보복에 나섰고, 그로 인해 지난 15개월 동안 4만6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11만453명이 부상을 입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은 주로 하마스에게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확히 해야 할 점은, 하마스의 공습이 단순히 정치 지도자들의 독단적인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하마스의 공습은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봉쇄와 탄압으로 인해 누적된 갈등이 폭발한 결과였어요. 이스라엘 전문가 론 하스너 교수의 말처럼, 이는 팔레스타인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기 위한 최후의 노력(last-ditch effort)"인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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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가 최후의 노력으로 무장 투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억압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내부와 외부에서 누적된 갈등과 좌절의 결과였어요. PLO의 정책적 실패, 특히 오슬로 협정으로 대변되는 사실상 불평등한 협정과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민간 지역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강화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평화적 방식만으로는 독립을 쟁취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되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저항과 무장을 통해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고, 이를 대표하는 세력이 바로 하마스였죠.
하마스의 무장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 불균형 또한 하마스의 부상을 촉진했어요. 오슬로 협정 이후 PLO를 이끌던 파타가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집중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자, 하마스는 이를 "팔레스타인 민족의 권리와 독립을 팔아넘기는 행위"로 간주하며 강하게 반발했죠. 하마스는 무장 저항만이 팔레스타인의 자주성을 회복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고, 이 입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 사이에서도 무장 투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어요.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의 절반 이상인 53%가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장 투쟁"이라고 응답했죠. 이는 단순한 폭력 행사가 아니라, 국제사회와 강대국들에게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알리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였어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습 또한 처음부터 대규모 민간인 공격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마스의 최초 계획은 이스라엘군 기지 두 곳을 공격하고 군인들을 납치하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민간인과 팔레스타인 민병대, 무장한 자발적 참여자들이 추가 공습을 벌이면서 사태가 확대되었죠. 이는 하마스의 무장 투쟁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와 좌절이 모인 집단적 아우성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절박한 항거는 결국 중동의 여러 동맹국과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었고, 서안지구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팔레스타인인들까지 반응하게 만들었어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바라는 하마스의 무장 투쟁은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폭력에 맞선 저항의 한 형식입니다. 물론 이로 인해 발생한 이스라엘의 민간인 피해와 하마스의 국제법 위반 문제는 비판의 여지가 분명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마스가 무장 투쟁을 선택한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군사적 압박과 PLO의 정치적 타협이 실패한 자리에서, 팔레스타인의 독립과 생존을 위해 선택된 궁극적 저항의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폭력의 선택이 아닌, 오랜 억압과 고립 속에서 나온 팔레스타인 민중의 절박한 항거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하마스를 단순히 '테러 조직' 혹은 '악의 축'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위험한 시각입니다. 하마스는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팔레스타인의 합법적인 집권 여당이에요. 그들이 무장 투쟁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고 이스라엘을 습격했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폭격과 봉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하마스의 무장 투쟁이 이스라엘의 철저한 통제와 봉쇄 속에서 고통받는 가자지구 민간인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가로막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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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섹션에서는 최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일선의 보도를 통해 공유드립니다. 1996년 뉴욕에서 시작된 독립 언론 데모크라시 나우 (Democracy Now), 1989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인권 옹호 비영리 단체 벳셀렘 (B'Tselem), 2001년 시카고에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전문 독립 언론 일렉트로닉 인티파다 (The Electronic Intifada)의 글을 다룹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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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NOW]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 지속하며 휴전안 표결 진행 (바로 가기) |
[DEM NOW] 네타냐후, 미국이 휴전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공습 재개 승인했다고 밝혀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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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elem] 휴전은 반갑지만, 재난은 계속되고 있다 (바로 가기) |
[B'Tselem] 이것은 휴전이라고 할 수 없다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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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lectronic Intifada] 하마스에 대한 서구의 판단, 왜 틀렸는가 (바로 가기) |
[The Electronic Intifada] 언론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비인간화함으로써 가자지구의 집단 학살에 불을 지폈다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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