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팔레스타인 분쟁은 현재의 국제적 양상을 띄게 되었는가
지금, 가자는 어디로 가고있나 |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와의 회담 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강제 이주와 지역 개발을 선언했으며, 이는 휴전 협상이 진정한 평화가 아닌 식민 사업을 위한 전략이었음을 시사한다.
논란의 휴전안, 과연 평화의 길인가 |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공습을 계속했고, 이에 하마스가 인질 석방 누락으로 대응하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이동을 통제하고 서안지구를 공격했다.
휴전의 끝,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다 | 휴전 1단계가 이스라엘의 지속적 공습으로 불안한 가운데, 2단계 협상은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 문제와 네타냐후 정부 내 극우 세력의 반대로 진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너진 가자지구, 재건 둘러싼 과제 | 기반시설이 완전히 붕괴된 가자지구의 빠른 회복은 어려워보이지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주민들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재건 노력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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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발행 (25.02.07) 이후 트럼프 정부의 독단적이고 파괴적인 결정은 쉴 새 없이 몰아쳤고, 그 급류 속에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는 더욱 주변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휴전 2단계가 원만히 진행되어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가 진행되었어야 하는 시점이지만, 평화 협상의 미래는 점점 흐릿해 보입니다.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시민들은 이 카오스 같은 현실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묵살시키려는 듯, 미국과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무법자로 전 세계 위에 군림하고자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에 '봉기'는 이번 호수와 다음 호수에 걸쳐 팔레스타인 영토를 둘러싼 분쟁의 시작과 발전을 톺아보며, 어떻게 이 분쟁이 국제화되었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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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영토를 둘러싼 현대의 분쟁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의 이중적 정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15년 영국은 '맥마흔 선언'을 통해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했으나, 불과 2년 후인 1917년 '밸푸어 선언'을 발표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모순된 입장을 취했죠. 이 선언의 이면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 내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영국의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밸푸어 선언 이후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급증하면서 지역의 인구 구성은 서서히 변화했습니다. 영국의 위임통치 기간(1920년 - 1946년) 동안, 영국은 노골적으로 편향된 정책을 펼쳤고, 이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무장은 철저히 통제한 반면, 유대인들의 무장은 '자위권'이라는 명목으로 묵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UN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지역 분할을 결정했습니다. 놀랍게도 당시 이 지역 인구의 65%가 팔레스타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UN 분할안은 전체 영토의 56.47%를 유대인에게, 43.53%만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할당했죠. 이 불공정한 분할안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향후 수십 년간 이어질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분할안 발표 직후인 1947년 12월부터 유대인 민병대는 '플랜 달렛'(Plan Dalet)이라는 체계적인 전략 아래 팔레스타인 마을들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일란 파페의 말에 따르면, 이 전략은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을 의도적으로 몰아내기 위한 계획이었는데요. 시온주의자들은 주요 유대인 정착지를 빠르게 확보한 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공격을 확대하며 주민들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전술을 사용했죠. 이들은 마을을 포위하고 한쪽 방향만 열어두어 주민들이 그쪽으로 도망가도록 유도했으며, 쫓겨난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곳곳에 지뢰를 매설하기도 했습니다.
1948년 봄, 폭력 사태는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1948년 4월 10일 데이르 야신 마을에서는 90명이 넘는 주민이 학살당했고, 5월 22일 탄투라에서는 팔레스타인인 230명이 무참하게 살해돼 공동 묘지에 매장되었습니다. 이러한 대학살은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공포를 확산시켰습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과 함께 약 75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강제로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사건을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릅니다. '약속의 땅'에서 그 어떤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제1차 중동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심각한 파벌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던 팔레스타인은 '민족 청소'를 작정하고 공격한 이스라엘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패배했습니다. 1948년 5월 중순 아랍국 연합 병력은 단 2만 5000명에 불과했던 반면, 이스라엘방위군은 빠르게 성장하여 7월 중순에는 6만 5000명, 12월에는 무려 9만 명을 넘어섰고, 아랍연합군 또한 무너뜨렸습니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냉전 구도가 중동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1956년 나세르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은 제2차 중동전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소련이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 지역의 전략적 파트너로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팔레스타인 땅을 둘러싼 분쟁은 지역적 갈등을 넘어 국제적 차원의 문제로 확대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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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1967년, 주변 아랍국가들을 선제공격하고, 크게 승리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제 3차 중동전쟁입니다. 제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중동 지정학의 근본적인 재편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로부터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골란고원, 시나이반도를 점령했죠. 겉으로 이스라엘은 이를 '방어적 조치'의 전쟁이었다고 합리화하지만, 실상은 치밀하게 계산된 영토 확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동의 지도는 6일 만에 다시 그려졌습니다.
6일 전쟁 이후 같은 해 11월 22일 채택된 UN 안보리 결의 242호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통해 점령한 모든 영토를 본국에 반환 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결의안에는 치명적인 모호성이 내재되어 있었는데요. 영문 원문을 살펴보면 "withdrawal from territories"(영토에서의 철수)라고 명시되어있는데, 여기서 특정 영토를 명시하는 관사 'the'가 빠져있던 것입니다. 이 작은 문법적 차이는 이스라엘에게 '모든 점령지'가 아닌 '일부 점령지'에서만 철수할 수 있는 법적 틈새를 제공해버렸죠. 이는 철저히 의도적이었고, 미국의 법률 전문가들이 결의안 초안 작성 과정에서 개입한 결과였습니다.
동시에 미국과 이스라엘 간 '특별한 관계'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모든 미국 원조 수혜국들과 달리, 이스라엘만이 유일하게 원조 사용내역을 보고할 의무가 면제되었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불법 정착촌을 건설하는 데 미국의 자금이 유용되어도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더불어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전략적 묵인'이라는 이중 기준을 적용했는데요. 이란과 같은 다른 중동 국가들의 핵 개발은 강력히 제재하면서도, 이스라엘에게는 예외를 둔 것입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이후, UN은 결의 338호를 통해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했고, 국제법 위반에 대한 실질적 제재는 없었습니다. 이는 국제 질서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강대국의 비호를 받는 국가는 국제법 위에 설 수 있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단적이고 불법적인 안전 지대 아래에서 끔찍한 학살은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1982년 9월 16일 일어난 사브라-샤틸라 학살이 그 대표적인 예시인데요. 그날,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가 베이루트 동부지역에 위치했던 샤브라-샤틸라 난민촌에 들어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량 학살하도록 도왔습니다. 난민촌 주변을 봉쇄하고 조명탄을 발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학살에 동참했고, 약 38시간 동안 도망갈 곳 조차 없었던 3천여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끔찍하게 사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누구도 죄 몫을 묻지 않았고, 그날의 학살을 묵인한 아리엘 샤론은 이스라엘 우익의 영웅격으로 추대받으며 추후 총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반인륜적 행위에, 팔레스타인 시민 저항 세력은 제 1차 인티파다를 통해 새로운 연대를 도모했습니다. 가자지구의 자발리아 난민촌에서 시작된 이 ‘봉기’는 이스라엘군의 탄압에 맞서는 돌팔매 청년들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이는 여전히 학살과 식민지 점령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시민 저항 운동의 상징이고, 뿌리로 남아있죠.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의 대응은 가혹했습니다. '뼈 부러뜨리기 정책'으로 알려진 이츠하크 라빈의 지시 아래, 이스라엘군은 시위자들의 팔과 다리를 의도적으로 부러뜨리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집단 처벌의 일환으로 가옥 철거, 통행 금지, 행정구금(재판 없는 구금)을 광범위하게 시행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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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도로 체결된 1993년 오슬로 협정은 역사적인 화해의 순간으로 포장되었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도된 구조적 불평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PLO는 이스라엘의 존재권을 인정했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명시적으로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이는 '평화 프로세스'라는 이름 아래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무기한 지연시키는 전략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설립은 외견상 자치의 시작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 점령의 비용을 줄이고 책임을 전가하는 방편이었죠. PA는 자체 군대도, 국경 통제권도, 경제적 자립도 갖지 못한 채, 이스라엘이 징수하는 세금의 반환과 해외 원조에 의존했습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PA 보안부대가 이스라엘과 협력하여 팔레스타인 내 무장 단체를 단속하는 역할을 맡게 된 점입니다. 사실상 '자기 점령'의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후 1995년 오슬로 II 협정은 서안지구를 A, B, C 지역으로 분할하는 복잡한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외견상 점진적 주권 이양의 모델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단절된 '반투스탄'으로 분리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C 지역(서안지구의 약 60%)은 이스라엘의 완전 통제 하에 두어, 미래 정착촌 확장의 여지를 남겨두었고, 실제로 현재 서안지구가 위기에 처한 이유이기도 하죠. (Al Jazeera 제공 지도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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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 기간 동안 '정직한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 패권국일 뿐이었습니다. 미국의 전략은 '개별적 평화협정'을 통해 아랍 연대를 분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를 팔레스타인 문제로부터 격리시켰던 캠프 데이비드 협정 때와 마찬가지로, 오슬로 협정의 목적은 평화 증진이 아닌 갈등 관리와 위험 국가 중립화, 그리고 미국의 패권 안정화였습니다. 결국 이 시기는 '힘의 불균형'이 국제 관계의 본질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강한 동맹국의 지원과 국제 시스템의 구조적 약점을 이용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지속적으로 잠식하면서도, 미국은 '평화를 원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죠. 가면 뒤에 숨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끔찍한 행패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매일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희망을 좌절당했습니다. 평화라는 수사와 달리, 오슬로 협정은 결국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지연시키고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번 호에서 서술한 1917년부터 1995년까지의 역사가 어떻게 미국과 이스라엘의 현재 정치와 맞닿아있는지를 살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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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섹션에서는 최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일선의 보도를 통해 공유드립니다. 1996년 뉴욕에서 시작된 독립 언론 데모크라시 나우 (Democracy Now), 1989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인권 옹호 비영리 단체 벳셀렘 (B'Tselem), 2001년 시카고에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전문 독립 언론 일렉트로닉 인티파다 (The Electronic Intifada)의 글을 다룹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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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NOW] 미국, 하마스와 사상 첫 직접 회담… 트럼프, 하마스에 인질 석방 요구하며 최후통첩 (바로 가기) |
[DEM NOW]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가자 지원 차단 및 휴전 방해... 미국은 이스라엘에 40억 달러 무기 보내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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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NOW] 이스라엘, 가자 의료진 대상 광범위한 공격 자행 (바로 가기) |
[B'Tselem] 이스라엘 정부, 인권 단체 말살 시도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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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lectronic Intifada] 고요한 밤이 전장이 될 때 (바로 가기) |
[The Electronic Intifada] 이스라엘 군인들, 서안 가옥 훼손하고 주민들 모독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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