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팔레스타인 분쟁은 현재의 국제적 양상을 띄게 되었는가
'약속의 땅'에 '약속'은 없었다 | 팔레스타인 분쟁은 영국의 모순된 정책에서 시작되어, 이스라엘 건국과 강제 추방, 중동전쟁을 거치며 국제적인 갈등으로 확대되었다.
6일 만에 중동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다 | 이스라엘은 6일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미국의 지원 아래 국제법을 무시한 점령과 학살을 지속했으며, 이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시민 저항은 인티파다로 이어졌다.
미국은 평화의 중재자가 맞는가 | 오슬로 협정은 평화로 포장되었지만, 실상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연시키고 이스라엘의 점령을 정당화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고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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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은 오랜 시간 동안 국제 지정학의 가장 까다로운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석유가 풍부했던 탓에,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영국, 소련의 군대가 모두 주둔한 군수 물품의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냉전 시기에 중동 국가들은 소련과 미국의 살기 어린 얼음판 위를 걷고 있었고, 미국은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회유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던 중 중동 지역을 뒤흔들며 부상한 나라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지난 호 참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다비드 벤 구리온은 유엔에 국가 수립을 요청했고,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11분 만에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필요했고, 이스라엘은 미국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은 이스라엘을 등에 업고, 1953년 이란의 민족주의 지도자 모하마드 모사데그를 CIA를 통해 축출하는 등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였습니다.
1967년 6일 전쟁과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며 중동에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였습니다. 1978년 카터 행정부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하여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성사시켰으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과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로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가 약화되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미국은 이스라엘의 점령지 내 정착촌 확장을 지원하고,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는 등 복잡한 중동 정책을 전개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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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 부시(1989-1993) 행정부는 걸프전을 통해 중동에서 미국의 지정학적 이익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부시 행정부는 즉각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을 배치하고 30개국 연합군을 구성하여 대응하였습니다. 마드리드 회담을 주선하며 평화 중재자를 자처했으나, 이는 미국의 중동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전략적 계산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에 대한 비판은 있었으나, 실질적인 제재 조치로 이어지지 않았고, 인티파다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한편, 빌 클린턴(1993-2001) 행정부는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중재하여 첫 번째 인티파다를 종식시키고,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인정하였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협정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동예루살렘의 지위,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 문제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지난 호 참고). 협정의 최종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표면적 협정이었고, 이스라엘에게 정당화의 빌미를 제공했죠.
2001년 9월 11일, 조지 W. 부시(2001-2009) 행정부 아래에서 9·11 테러가 일어납니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그는 중동 정책을 전면 재편했고, 2001년 10월에 아프가니스탄을 공격, 2003년 3월에는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의 축출을 “중동 민주화”의 첫 단계로 보았으나, 이라크는 내전에 빠졌고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캠페인은 실패하였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불신을 고조시켰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근본적 해결에서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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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정을 주도하는 등 새로운 중동 정책을 개진할 것으로 기대됐던 버락 오바마(2009-2017) 행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네타냐후 정부와의 표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이스라엘 군사원조는 역대 최대 규모인 380억 달러 패키지를 달성했죠.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적 수사와 실질적 정책 사이의 괴리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듯했으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서안지구 정착촌 확장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유엔 안보리에서의 거부권 행사와 같은 소극적 지원에 그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2017-2021) 행정부는 미국의 중동 정책에서 균형성이라는 외교적 가장(假裝)마저 벗어던졌습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을 이전함으로써 70년간 지속된 국제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골란고원 주권 인정은 국제법 위반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행태였습니다. 이란 핵협정 탈퇴와 아브라함 협정 중재는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소위 "세기의 거래"는 팔레스타인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한 채 이스라엘의 이익만을 반영한 일방적 제안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는 무명과도 같았던 조 바이든(2021-2025) 행정부의 시기를 보내고, 다시 도널드 트럼프의 행정부로 돌아왔습니다. 매일같이 좌절의 한숨을 더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소식 속에 유일하게 진보하고 있는 것은, 팔레스타인을 위해 외치는 더 커진 연대의 목소리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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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발포어 선언 이후 서방 강대국들은 중동 지역에서 자국의 지정학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진해왔습니다. 냉전 시기 미국은 이스라엘을 소련 영향력 견제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했으며, 이러한 동맹 관계는 냉전 종식 이후에도 관성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동 정책은 석유 자원 확보, 지역 패권 유지, 군산복합체의 이익 등 다양한 전략적 계산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적 요인들이 미국 외교정책의 불균형성을 고착화시키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행정부 간에는 접근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이는 본질적인 정책 방향의 차이라기보다 전술적 차이에 불과합니다. 민주당 행정부들은 외교적 수사와 다자주의적 접근을 선호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핵심적 지원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공화당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공화당 행정부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군사적 접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두 정당 모두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특수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왔습니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 이스라엘 지지, AIPAC과 같은 강력한 로비 단체의 영향력, 그리고 미국 내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의 정치적 압력은 미국의 중동 정책이 균형적 접근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국내적 요인들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편향성은 중동 지역의 평화 프로세스를 저해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재개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을 바라보며, 당장의 학살을 중단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비극을 반복하게 만드는 불공정한 국제 정치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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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달 간 가자지구에는 불완전한 평화가 잠시 찾아왔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규모 가자지구민 학살에 제동을 건 하마스-이스라엘 간 휴전 협상안 체결의 영향으로, 양측은 서로의 인질을 교환하며 협상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신경전을 벌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학살을 적극 지원하는 트럼프 정부의 당선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정치적 압박의 영향인지,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전쟁(학살)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왔습니다. 그러다 돌연 지난 주 화요일인 3월 18일, 이스라엘은 일방적으로 협상을 깨고 다시금 가자지구 공격에 나섰습니다. 불완전하게나마 평화가 시작된 지 고작 두 달 만이었습니다.
<봉기>는 지금껏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며 조금은 느린 보폭으로 현상을 따라갔습니다. 우리의 사명이자 발간 취지인 ‘무기가 있는 자들에게는 전쟁이고, 무기가 없는 이들에게는 학살이다’는 메시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단순히 뉴스를 전하는 것보다는 오랜 역사와 지형을 분석하는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하루 단위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봉기>는 이런 변화에 대응해 독자 여러분께 보다 신속한 소식통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지난 여섯 번의 발행에 걸쳐 진행한 가자지구 땅의 역사 톺아보기를 마무리하며, <봉기>의 구성과 형식을 다음과 같이 전환하고자 합니다:
- 격주 발행 → 매주 발행
- 심층 분석 및 헤드라인 전달 → 뉴스 스크랩 및 요점 정리 전달
봉기의 형식은 달라지지만, 인류의 존엄을 지키고 갈등의 본질을 바로 보겠다던 인삿말에서의 약속은 변함없이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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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섹션에서는 최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일선의 보도를 통해 공유하고, 정리해드립니다. 1996년 뉴욕에서 시작된 독립 언론 데모크라시 나우 (Democracy Now), 1989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인권 옹호 비영리 단체 벳셀렘 (B'Tselem), 2001년 시카고에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전문 독립 언론 일렉트로닉 인티파다 (The Electronic Intifada) 의 글을 중심으로 다양한 자료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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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CHR]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체계적인 성폭력, 생식권 침해, 성별 기반 폭력을 사용했다' (바로 가기) |
[DEM NOW] 끝나지 않는 트라우마, "이스라엘은 단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는 중이다"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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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NOW] "이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유엔, 이스라엘의 유엔 시설 치명적 공격 규탄 (바로 가기) |
[B'Tselem]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로드맵: 나크바(Nakba), 강제 이주와 추방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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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elem]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학살과 파괴 작전 재개 (바로 가기) |
[Electronic Intifada] "내 이름은 마흐무드 칼릴, 나는 정치범입니다", 이스라엘 감옥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정치범"의 이야기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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